두 발로 달리는 악어라니, 2억 년 전 진화의 거대한 장난
황무지 지층에서 나온 신종 주룡류 화석 '라블하스크스' / Jorge Gonzalez
진짜 뜬금없는 곳에서 터졌습니다. 미국 뉴멕시코주의 그 황량한 붉은 땅, 고스트 랜치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흙먼지 다 뒤집어써 가면서 땅을 파던 연구원들이 순간 얼어붙었죠.
흙더미 사이로 툭 튀어나온 뼈 실루엣이 진짜 기괴했기 때문입니다. 탄탄한 뒷다리로 대지를 팍팍 차면서 달렸을 것 같은 몸집인데 앞발은 뭐 제대로 쥐지도 못할 만큼 민망하게 짤막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충 봐도 타조 비스무리하게 생긴 공룡이 100% 확실해 보였습니다. 황무지에서 툭 튀어나온 기괴한 실루엣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 공룡의 탈을 쓴 악어 가문의 이단아
황무지 지층에서 나온 신종 주룡류 화석 '라블하스크스' / Jorge Gonzalez
그런데 정밀 분석을 마친 연구팀 입에서 진짜 골 때리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이게 공룡이 아니랍니다. 늪지대에 배 깔고 엎드려 있는 그 징그러운 악어의 직계 조상뻘이라나요.
지금으로부터 약 2억 1,200만 년 전 삼첩기 후기 대지를 휩쓸고 다녔다는 이 신종 화석 이름은 '라블하스크스 에크스펙타투스(Labrujasuchus expectatus)'입니다. 대충 풀면 '기다려온 마녀의 악어'라는 뜻이죠.
솔직히 이 대목에서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악어랑 공룡은 이미 진화 계보가 완전히 갈라져서 서로 남남인 시대였는데 왜 악어 집안에서 뜬금없이 공룡의 탈을 쓴 이단아가 튀어나온 건지 이해가 안 가잖아요.
◆ 뼈 구조가 말해주는 소름 돋는 진화의 법칙
황무지 지층에서 나온 신종 주룡류 화석 '라블하스크스' / Jorge Gonzalez
이게 단순한 착시나 해프닝이 아니었습니다. 비밀은 겉껍데기가 아니라 뼈 안쪽에 꽁꽁 숨어 있었거든요.
외형만 보면 깃털 다 빠진 공룡 같아도, 허벅지뼈랑 어깨뼈의 아주 미세한 핵심 구조를 뜯어보니까 빼도 박도 못하게 악어 계열(위악류)의 고유한 유전적 특징을 고스란히 박아 넣은 상태였습니다.
생물학에서 말하는 수렴 진화의 완벽한 샘플인 셈입니다. 바다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포유류인 돌고래랑 어류인 상어가 결국엔 존존똑인 유선형 몸매를 갖게 된 것처럼 말이죠.
◆ "나올 줄 알았다" 학자들이 20년을 버틴 이유
황무지 지층에서 나온 신종 주룡류 화석 '라블하스크스' / Jorge Gonzalez
여기서 잠깐, 소름 돋는 포인트가 하나 더 있습니다. 학자들이 사실 이 지층을 뒤지기 전부터 속으로 "아, 이 시기쯤이면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녀석이 무조건 나올 타이밍인데"라면서 자기들끼리 확신하고 있었답니다.
그 오기 하나로 무려 20년 동안 매년 여름마다 그 뙤약볕 밑에서 삽질을 해댄 겁니다. 마침내 본인들이 계산기 두들겼던 딱 그 시절 지층에서 이 해골을 찾아낸 거죠.
◆ 만약 이 녀석들이 살아남았다면?
황무지 지층에서 나온 신종 주룡류 화석 '라블하스크스' / Jorge Gonzalez
공룡이 지구를 통째로 집어삼키기 전인 삼첩기 시절, 대자연은 진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과감하고 황당한 생명 실험을 즐겼던 게 분명합니다.
악어의 피를 흘리면서도 공룡처럼 당당하게 두 발로 질주했던 이 기묘한 괴물 녀석.
만약 이 녀석들이 운 좋게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우리 곁에 뽈뽈거리고 돌아다녔다면 지금 생태계는 대체 어떤 해괴망측한 모습이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